(미술(예술)/목격과 기록과 생각

주슬아 작업 메모 (《두산아트랩 전시 2022》를 보고)

hasangpaullim 2022. 2. 18. 00:12

비유의 함정에 빠지는 일을 무릅쓰고서 주슬아의 작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의 작업은 마치 '괴혼'* 같다. 어떤 기술을 체화 하거나 '오브젝트'—'사물'/'목표'/'관심의 대상'으로서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체계와 검증의 결과를 따르기 보다, "행성과 천체"**를 만들기 위해서 원형체의 무언가를 굴리고 굴려 그 과정에 달라붙는 것들을 거침없이 수용한다. 주슬아의 작업은 그 안에서 매체와 재료에 위계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순서 또는 원인-결과의 차원에서 위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와 재료가 상호의존적으로 뒤섞여 있다는 측면에서 위계를 두기 어렵다는 말이다. 가령 그의 작업에서 3D 그래픽 영상과 3D 프린트 된 조형물이 그렇고, 실크스크린과 프린트 된 타투스티커가 그렇다. 어떤 매체/재료가 더 미술적이라는 이유로 우선권을 갖지도 않으며, 더 비미술적이라는 이유로 미술적 매체/재료의 위상을 선취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오직 "행성과 천체"를 만들기 위한 궁리에 몰두하는 듯하다.

 

한편 새로운 "행성" 혹은 "천체"가 탄생하고 나면 이는 곧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의심'은 거침없는 굴리기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작업의 원동력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의 변모 과정을 시간 순으로 놓고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스터디에 해당하는 작업을 제외한) 그의 초기작의 경우 회화 평면을 목적지로 정해 놓은 계획된 경로가 있었다면, 그 이후의 행보는 지나온 길을 거꾸로 되돌아 가본 뒤 '의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 경로에서 탈주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의심'은 단일한 미술 매체/재료 내부에서 작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작업과 생활 전반에 스며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 작업과 현재 작업 사이, 그리고 이전 전시와 현재 전시 사이를 계속 의심하는 태도는 양자 사이를 연결하며 유연하게 방향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동관절***의 역할을 한다. 작업에서 가상과 현실, 비물질과 물질을 오가는 매체의 전이 과정은 오류와 간극을 봉합하는 행위의 연속인데, 이때의 경험이 그 스스로의 계획 혹은 결론을 의심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확언을 의심하도록 이끄는 것 같기도 하다.

 

〈소울 피싱〉, 2021, 싱글 채널 비디오, 3D 프린트 한 레진에 폴리카프로락톤, 4분 5초, 130×125×133cm

 

 

 

*2004년 남코에서 발매한 PS2용 게임 〈괴혼: 굴려라 왕자님〉을 시작으로 하는 ‘괴혼’ 시리즈를 말한다.

 

**〈괴혼: 굴려라 왕자님〉은 “코스모의 아바마마(매우 크다)가 술주정으로 하늘의 행성과 다른 천체들을 모두 파괴해버렸다. 그래서 아바마마가 왕자(매우 작다)에게 지구로 가서 덩어리(자기보다 작은 모든 물건을 붙여서 커지는 것)를 사용하여 여러 물건들을 모아 이것을 하늘에 띄워 행성과 천체를 다시 만들게 한다”는 스토리의 게임이다.

 

***가동관절(可動關節): 움직임이 비교적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관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