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평생을 배우는 존재다. 이 짧은 문장은 누군가에게는 관용적 표현으로 느껴지거나, 누군가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평생을 배운다는 말에 공감한다. 배움이 어떤 특정한 시기의 학습과정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배우다’라는 동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얻다. (2)새로운 기술을 익히다. (3)남의 행동,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 (4)경험하여 알게 되다. (5)습관이나 습성이 몸에 붙다. 이 중 (4)에 초점을 맞추면 대부분의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상황에서 배움의 기회와 마주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는 한 배움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다만 이때 경험을 통한 앎은 이를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지에 따라 기존의 경험과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가치 있는 배움이 될 수도 있고, 단지 하나의 개별적인 정보에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와 같은 맥락에서 ‘교육’은 경험하여 알게 사실을 가치 있는 요소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존 듀이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에 이르는 탐색의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리하면, 인간은 평생 무언가를 경험하며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앎을 보다 가치 있게 하는 교육적 전환을 통해 자신의 삶에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배움을 얻는다. 그런데 ‘인간은 평생 배우는 존재’라는 주장은 ‘인간은 평생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와 함께 한다. 완전한 존재라면 더 이상 경험을 통해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완전성은 증명하기 어려운 반면,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근거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이 평생을 배운다는 관점과 불완전하다는 전제는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에 대해 다시 숙고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일반적으로 교육은 교수자가 학습자를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행위를 말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선형적인 양상으로 흐르며 진행된다. 동시대 교육에서는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의 상호작용성을 비롯해 학습자의 자율성, 주체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교수자의 역할은 원조자(helper) 또는 촉진자(facilitator)로 제한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수자가 없는 학습도 가능하다. 그런데 교수자 중심 교육과 학습자 중심 교육은 얼핏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는 듯이 보이지만 양자 모두 학습자의 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각자의 출발 방향은 다를지 모르나 먼 길을 돌아서 결국 학습자의 배움과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때 인간이 평생 배운다는 관점과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교수자는 학습자를 목적지로 인도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경험하며 배우는 존재이다. 교육 안에서 학습자의 배움 뿐만 아니라 교수자의 배움에 주목하고 이를 규명할 수 있다면 교육 행위를 보다 다층적으로 바라보고 이로부터 확장된 교육의 선순환적 가치와 의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