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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이모저모

hasangpaullim 2022. 12. 3. 14:04

2022년 카타르 남자 축구 월드컵은 내가 직접 봤고 기억하는 월드컵 중 가장 논쟁적인 대회다. 논쟁이 수면에 떠오르기 전 이미 개최 시기와 개최지부터 기존 대회와 차별성을 가지며 화제였는데, 여름에 열리던 기존 월드컵과 달리 가을과 겨울 사이에 진행되고, 또 이슬람권 국가에서 열리는 최초의 대회이기 때문이었다.

여러 논쟁들 가운데 처음 드러난 문제는 월드컵의 준비 과정에 동원된 수많은 이주 노동자가 사망한 일이다. 인구 300만 명 중 200만 명이 이주 노동자인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를 확정지은 후 경기장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걸쳐 공사와 정비를 진행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월드컵 준비 기간 동안 400~500명의 이주 노동자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고, 영국의 한 일간지는 650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타르 측은 고작 40명의 이주 노동자만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것도 단 3명만이 업무로 인해 사망했고, 37명은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이 중 어느 쪽이 통계의 함정을 이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숫자와 상관 없이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생을 마감한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또 다른 논쟁거리는 카타르의 성소수자 혐오적인 문화와 사법 체계다. 카타르는 동성애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론 이를 두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국가다. 카타르 당국은 월드컵을 맞이해 국외의 성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이 모습이 월드컵 폐막 이후 국내의 성소수자들에게도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의적이라고는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보안/안전 운영위원회의 책임자는 카타르를 방문할 이들을 향해 “만약 무지개 깃발을 든다면 그들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깃발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전형적인 호의를 가장한 혐오 발언이다. 21세기에 월드컵 같은 전 지구적 대형 이벤트의 거의 유일한 순기능은 여러 국가의 여러 구성원이 보편적 가치에 대해 다같이 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어쩔 수 없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카타르 월드컵은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혐오는 여성을 향해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남성 후견인 제도 때문에 카타르의 여성은 삶의 중요한 결정에 앞서 아버지를 비롯한 친족 남성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문화적 차이로 넘기고 논쟁의 장을 유예한다면 월드컵이라는 전 지구적 이벤트는 이 세계와 관계 없는 폐쇄적 공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가상의 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지만, 당사자인 선수와 코치, 관중 등 게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은 각자 하나의 신체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가상의 장', '정정당당한 승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하나의 신체는 사회와 게임 사이를 수시로 넘나들며, 둘 사이에서 완벽히 분열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여성의 자율성이 배제되는 사회에서 스포츠라는 게임은 완전한 '가상의 장'과 '정정당당한 승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학교 혹은 동네의 운동장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가상의 장'인 남성, 그리고 운동장을 차지하는 일이 현실 그 자체인 여성이 함께 존재하는 사회에서 스포츠는 가치 중립적인 상태로 존립할 수 있을까? 여성이 참여할 수 없는 종목의 남성 선수는 순수한 게임의 법칙 안에서 승부를 펼칠 수 있을까? 온전히 게임에 임하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 아닐까?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한 팀 중 '가상의 장'과 실제 사회 사이에서 가장 흔들린 팀은 이란 대표팀이었다. 이란 자국은 한 여성의 의문사에서 촉발된 히잡 반대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격변의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와중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선 이란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조심스럽게 국가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란의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안에는 친/반 정부의 입장에 선 관객들이 공존한 까닭에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쏟아졌다고 하는데, 누가 어떤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가상의 장'에서 동요 없이 경기에 임했는지, 매 순간 흔들렸는지 확언할 수 없지만 결국 이란 대표팀은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편 이번 월드컵은 논쟁적인 대회이기도 하지만 작게나마 숨이 트이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32강 조별리그 최종전 중 하나인 독일 대 코스타리카 경기에서 주/부심 3명이 모두 여성 심판으로 배정됐는데, 이는 92년 역사의 남자 월드컵 본선 경기에 최초의 여성 주심이 배정된 사례이면서 동시에 모든 심판진이 여성으로 꾸려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별일 아니라 생각할 수 있으나 다른 수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의 역사 또한 불균형한 가부장제의 토양 위에 만들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의 승부를 여성이 판정하는 일은 상상하기도, 실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유리 천장을 깨고 남자 스포츠에 심판으로 선 여성들은 그 경기를 판정하는 동시에 자신도 어떤 심판대 위에 올려지고는 했다. 그건 이번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심으로 나선 스테파니 프라파르는 자신을 비롯한 심판진에게 쏠리는 관심을 알고 있는 듯 “우리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하게 집중할 것이고 언론이나 기타 다른 것들에 신경쓰기보다 현장에 집중할 것”이라 말하며, 사실은 그 누구보다 ‘가상의 장’에 몰입해야 할 심판으로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판정과 관련해 또 하나의 특기할 점은 어느 월드컵보다 더 전지적 시점을 가진 VAR을 도입한 것이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가상의 장'은 선수가 실제로 밟고 뛰는 사각형의 그라운드, 그리고 그 4개의 아웃라인을 수직으로 둘러싸는 가상의 평면체로 이루어진다. 이번 월드컵에 활용되는 VAR은 공과 선수의 모션을 다각도에서 추적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의 평면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인간 심판의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정확히 판정해내고 있다. 이 판정 기술의 하이라이트는 일본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나왔다. 경기를 보던 수많은 사람이 라인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한 공을 VAR은 나가지 않았다고 봤고, 그 판정으로 일본이 스페인을 이길 수 있었다. 인간 심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강팀에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VAR으로 인해 '가상의 장'에서만큼은 소위 약체로 분류되는 팀이 보다 정당한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참고]

일본 경기 VAR 관련: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21202n18113?mid=s0406&isq=10895

 

[월드컵] 일본 '1㎜의 기적' 만든 VAR…지금까지 44경기서 22회 판정 번복(종합) | 네이트 스포츠

해외축구>이슈/칼럼 뉴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비디오 판독(VAR)이 16강 진출 팀을 사실상 결정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일(한국시간)

sports.news.nate.com

카타르 월드컵 이주노동자 관련: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13015061303968

 

카타르 월드컵 준비 이주노동자 "400~500명 사망"…고위 인사 발언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숨진 이주 노동자 규모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망자 수가 "400~5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 고위 인사의 발언...

www.pressian.com

카타르 성소수자, 여성 인권 관련: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3657799

 

2022 카타르 월드컵: '죽임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싶지 않아요' - BBC News 코리아

'동성애자도 괜찮은, 동성애자라서 죽임 당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변화를 바란다'

www.bbc.com

이란 반정부 시위 관련: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1301726001

 

“카타르월드컵 미국·이란전,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시합 중 하나 될 것”

29일(현지시간) 치러진 카타르월드컵 미국과 이란의 B조 조별리그 경기가 정치적인 시합이 됐다는...

m.khan.co.kr

여성 주/부심 관련: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3831071

 

월드컵 사상 최초 전원 여성 심판진 - BBC News 코리아

스테파니 프라파르는 남자 월드컵 경기에 사상 처음으로 투입된 전원 여성 심판진을 이끌었다.

www.bbc.com

https://www.msn.com/ko-kr/sports/news/%EB%82%A8%EC%9E%90-%EC%9B%94%EB%93%9C%EC%BB%B5%EC%97%90-%EC%8B%AC%ED%8C%90%EC%9D%B4-%EB%AA%A8%EB%91%90-%EC%97%AC%EC%9E%90-%EC%83%88%EB%A1%9C%EC%9A%B4-%ED%9C%98%EC%8A%AC-%EC%9A%B8%EB%A0%B8%EB%8B%A4/ar-AA14OZdL

 

남자 월드컵에 심판이 모두 여자... 새로운 휘슬 울렸다

민트색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를 입고 머리를 묶은 여성 심판 3명이 선수들보다 먼저 등장했다. 2일 카타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독일과 코스타리카 경기 주

www.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