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안팎으로 움직이기: 콜렉티브 작동법》 전시 연계 토크 ‘죽음의 땅에서 만들고 살아가기’
토크*에서 라이 유 통 작가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공간’, ‘예술 밖의 예술’(둘 다 정확한 워딩은 아님)이라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림이 창문 밖을 바라보는 전시 방식을 넘어, 그림이 벽을 바라보는 전시 방식까지 상상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공간(특정 건축물, 장소 등)이 살아 있고, 예술이 꼭 전시장과 관객이 전제된 제도 내부에서만 작동할 이유(필요)가 없다면 예술은 혼자 어디서든 실천하고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확장하고 다시 수렴하는 활동의 원동력 같았다. 작가는 본인이 운영하는 공간의 이런 전시 방식이 지닐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 섞인 이야기(애써 창작한 작품을 극소수의 사람만이 목격하는 상황)도 했는데,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시 작품의 극소수의 목격자는 멀리 보이는 작은 그림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애써 찾아오는 관객이거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는 관찰자로서 보행자일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 싶었다. 작가는 전시 외에 꾸준히 책을 만들어서 작업을 선보이는 이유로 책과 전시의 다른 수요층을 말하면서, 책으로 만나는 사람(독자)이 전시장을 찾는 사람(관객)보다 작업을 더 자세히 찬찬히 본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예술 밖에서도 용케 예술을 찾아보고야 마는, 또는 예술인지 뭔지 몰라도 무언가를 자세히 보는 관객/관찰자를 위하는 전시 방식을 택하는 게 아닐까 상상해봤다.
*《안팎으로 움직이기: 콜렉티브 작동법》(~1.20., YPC SPACE) 전시 연계 토크 ‘죽음의 땅에서 만들고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