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운영 종료에 관한 메모
그간 문화예술계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몇몇 곳에서 일했다. 아르코 산하 인사미술공간을 비롯해, 서울문화재단의 모 창작 공간, 모 소규모 전시 공간, 그리고 모 국공립 미술관 두 곳. 이 중 미술관 두 곳을 제외하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공간’들은 대부분 운영 종료됐거나 종료될 예정이다.
공간의 운영 종료는 그곳에서 전시를 비롯한 창작 활동을 펼쳤던 작가와 기획자들에게 작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지 아카이빙, 홈페이지 등 기록이 소실되는 차원의 아쉬움이 아니다. 홈페이지, 기록물 등이 사후적으로 성실히 관리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사라지거나 크게 변화하면 그 공간을 통해서 과거의 활동을 상상적으로 기억할(될) 수 있는 여지가 소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아쉬움은 작가, 기획자 등 예술 생산자 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서 여러 다양한 경로로 예술을 매개하며 일했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력서에 몇 줄로 요약되지 않는 경험과 장면들이 공간이라는 기억 장치에 잠재되어 있다. 예술을 매개하는 이러한 노동의 흔적은 공식적인 기록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간의 사라짐은 더 아쉽다. 예술을 매개하는 노동 혹은 동력 역시 사후에 공간을 통해 상상적으로 기억할(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간의 사라짐을 더 문제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공간의 사라짐이 아쉬울 순 없고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 있겠다. 가령 모 소규모 전시 공간의 경우, 첫 월급부터 밀린 탓에 금방 그만두었고 그 후로 내 마음 속에서 일찍이 자체 운영 종료를 해두었다. 그래서 그닥 아쉬움도 없고 상상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없다. 기존 공간은 문을 닫은 듯한데 그 이름과 또 다른 공간 하나는 남아 있는 듯해서, 사실 실제로 운영이 종료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들은 (공립, 사립 운영 여부와 관계 없이) 사람들과 얽히며 기록과 기억을 간직하는 일종의 저장 매체이기에 중요하고, 또 아쉬울 가치가 있는 존재다. 수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얽힌 하나의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예술 창작의 기록과 기억 차원에서 문제적인 동시에, 예술을 매개하는 노동/동력의 기록과 기억 차원에서도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