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예술)
‘최종본’으로만 이루어진 어느 미술 아카이브(?)에 관한 메모
hasangpaullim
2025. 5. 27. 09:57
‘아카이빙‘, ’연구‘, ’창조적 활용‘은 모두 중요한 말이다. 다만, 이 말에는 무엇을/왜/어떻게/(누가)/(언제)/(어디에서) 아카이빙하고 연구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할지에 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무결/무해한 ‘말’은 비로소 비집고 들어갈 ‘빈틈’으로서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 빈틈이 없이 말로 말끔히 정의된 아카이브는 평온하다. 평온한 아카이브에서는 담당자, 생산자, 사용자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도 함께 평온하다.
이 아카이브는 ‘최종본’들로만 이루어진 아카이브다. 최종본으로만 이루어졌기에 그 최종본의 빈틈을 알 수조차 없다. 그래서 최종본은 말그대로 “수정 따위를 하여 고친 가장 마지막의 책이나 문서”로 평온하게 존재할 수 있고, 이 최종본들의 집합으로서 아카이브는 무결/무해한 언어로 단정히 정의될 수 있다. 이 아카이브는 무결/무해하기에 이를 참조했다는 보증을 받아 새로 생산된 말들은 ’사실‘로 여겨지고(심지어 사실이 아닐지라도), 또 다른 무결/무해한 말이 되어 이 아카이브의 무결/무해함을 강화한다.
그렇다면 나/너/우리는 “다양한 예술 주체 간의 지식과 자원의 공유 및 소통(÷)”을 위해서 이 무결/무해한 아카이브에 어떠한 ‘빈틈’을 만들 수 있을까. ‘최종본’들 사이에 무슨 ‘과정’과 ‘수정본’을 왜, 어떻게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떠한 ‘최최종본’, ‘최최최종본’, 혹은 ‘최종 없음’으로 이루어진, 시끄럽고 걱정 많은 아카이브를 함께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