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스포츠)

미술가는 배우는 존재

hasangpaullim 2022. 2. 6. 18:36

미술가는 계속해서 배우는 존재다. 계속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미술가일 필요는 없겠지만, 미술가가 계속 배우지 않는다면 과연 미술가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때 배움은 제도권 교육, 인간이 인간에게 가르침 받는 교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술가는 제도권 밖에서도, 스스로도, (비인간)사물에게도, 상황에서도 배운다. 미술의 범위, 매체의 장이 넓어지고 전통은 온전히 전수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미술가는 배움을 멈출 수 있을까? 미술가는 제도권 내에서 가장 미술적이라고 여겨지는 문제에서 배우는 동시에 의심하며, 아무도 관심 없는 문제에서 흥미를 갖고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마라톤(인생)은 인생(마라톤)과 같다고 할 때의 그 유명한 마라톤부터 그래픽 툴 유튜브 튜토리얼까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은 다양하다. 물론 여기에서 마라톤은 일종의 교훈으로 작용하고, 유튜브 튜토리얼은 일종의 재료로 체화되는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팀 한화 이글스의 투수 김범수는 유튜브를 통해 체인지업 그립(grip)을 익혔고 이는 그의 주요한 무기가 됐다. 김범수는 역대 최정상급 불펜 투수인 팀 동료 정우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튜브 영상으로 새로운 구종을 습득했다. 참고가 된 영상 속의 투수가 메이저리거였다는데, 한 구종의 그립은 모든 선수에게 결코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훈련을 동반한 손끝 감각이 쌓이지 않으면 체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김범수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친 존재가 메이저리그 투수인지, 아니면 유튜브 영상인지, 김범수 자신인지, 그 모든 상황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류현진이 구대성에게 서클 체인지업 그립을 배운 것처럼, 김범수가 정우람에게 새로운 구종을 배우려 했다면 체인지업을 익힐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사실 구대성에 따르면 그는 류현진에게 그립만 아주 잠시 알려줬다고 한다. 무슨 전수같은 걸 해준 게 아니라 류현진이 스스로 배우고 잘 던졌다는 얘기.)

*「"유튜브 보고 스스로 익힌다"…프로야구도 자율학습시대」: https://www.yna.co.kr/view/AKR20200617087600007

 

 

김범수가 그래도 야구의 범주 안에 있는 유튜브 튜토리얼을 통해 배웠다면, 미술가는 동시대 미술과 관련 없어 보이는 온갖 튜토리얼을 체화하며 상황 속에서 스스로 배운다. 개인에게 딱 맞는 미술 방법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통적인 미술 재료/매체를 다루는 것조차 제도권 교육 내에서 제대로 배우기 어렵고, 세계는 미술이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 예술에서 예술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르치는 일을 뛰어나게 잘한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예술 창작에서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배움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미술가가 있을지는 모르나, 실제로 배우기를 멈춘다면 그 미술가는 더 이상 미술가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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