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스포츠)

'배터리'의 일부로서 큐레이터

hasangpaullim 2025. 2. 24. 15:04

마코와 abs가 기획하고, 수건과 화환이라는 공간에서 이틀간 열린 〈포지셔닝 워크 위크〉*의 첫 날 세션 중 (전시)기획을 야구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개인전 기획과 관련해 어느 외국인 큐레이터가 보내왔다는 이메일을 일부 공유해주었는데, 그 내용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 포수 박경완의 캐칭에 관한 견해**큐레이터 요하네스 클라더스가 한 인터뷰에서 개인전(기획)이 갖는 의의에 관해 한 말들***이 떠올랐다.
 
비유는 언제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을 갖지만, 함정은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에 야구와 기획(혹은 미술)을 비유의 틀에 넣는 일은 충분히 해볼 만하다. 야구에서 포수가 하는 ‘캐칭’의 핵심은 공을 ‘프레이밍’ 하여 심판을 현혹하는 것이 아닌, “심판한테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서” 잡는 것이라고 말한 박경완의 조언에 따라 개인전 기획을 상상해 보면,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을 관객이 잘 볼 수 있도록 작업이 “오는 방향으로만 퉁 밀어“서 잡아주는 일을 하면 된다.
 
‘기술자’로서 큐레이터의 기획이 작가의 작업을 “끝으로 떨어지기 전에” 잡아 올려 ‘프레이밍’ 하는 기술을 요한다면, ‘배터리(짝을 이룬 투수와 포수)‘의 일부로서 큐레이터에게는 작가와의 신뢰 관계 속에서 작업이 잘 보이도록 하는 ‘캐칭’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프레이밍’은 스트라이크 판정 하나를 가져올 수 있으나 때때로 투수가 스스로 영점을 잡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한편 포수의 ‘잘 보이는 캐칭’은 투수가 지금 던진 공이 볼 판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던질 공이 이전의 공에게 도움받을 수 있도록 이끈다. 프레이밍이 투수의 질문을 포수가 해답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면, 잘 보이는 캐칭은 투수의 질문이 포수를 경유하여 투수에게 또 다른 질문으로 돌아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포수의 프레이밍이 한 타석, 한 이닝, 한 게임의 단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배터리 사이의 잘 보이는 캐칭은 한 게임의 전후, 한 시리즈의 전후, 한 시즌의 전후로 연장되거나 야구라는 종목 안팎을 오간다.
 
기술자로서 큐레이터가 프레이밍을 통해 한 작가를 기존 (스트라이크 존과 같은) 규범의 모서리에 절묘하게 위치시키며 관객에게 몸쪽(또는 바깥쪽) 꽉 찬 코스와 같은 해설을 제공한다면, 작가와 배터리를 이루는 큐레이터는 잘 보이는 캐칭을 통해 한 작가가 직전에 던진 공과 지금 던진 공과 앞으로 던질 공 사이의 차이와 관계를 스스로 감각하도록 도울 수 있다. 큐레이터의 잘 보이는 캐칭은 관객(혹은 심판)에게 잘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에게 잘 보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함께 잘 보는 일의 가능성을 전시 밖으로 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웹 사이트: https://maco.page/pww/
**다음 포스팅을 참고: https://cocoball-note.tistory.com/36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 지음, 송미숙 옮김, 『큐레이팅의 역사』, 미진사, 2013년, 90~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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