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관훈동 시절 처음으로 인미공 아카이브를 조성할 당시 의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가구가 제작됐다. 의자는 생김새도 다양하고 개수도 많았지만, 현재에는 아르코미술관 아카이브의 언저리 어딘가에 (아마도) 단 3개의 의자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사라진 의자들은 아마 낡거나 망가졌다는 이유로 처분됐을 텐데, 이들은 기관의 ’자산‘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리 어렵지 않게 처분됐을 것이다. 만약 자산으로 등록되어 있었다면 보다 더 많은 의자들이 여전히 미술관 또는 인미공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인미공 아카이브’에 놓여있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더 이상 앉아볼 수 없이 사라진 의자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과연 ‘존재’이기는 할까. 남아있는 의자들이 생각보다 더 편안하고 의자로써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상태이기에, 사라진 의자들의 상태와 그 존재 여부가 더 궁금하다.
그런데 만약 사라진 의자들이 폐기처분되지 않고 어딘가에서 쓰임을 다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면, 꼭 아카이브에 놓여 있지 않더라도, 자산으로의 지위가 없더라도 꽤나 괜찮은 의자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종본들의 모음으로 만들어진 평온한 미술관의 아카이브에서 평온하게 의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리빙 아카이브”를 구성하던 이 의자들에겐 지루한 과업일 것이다. 또 자산이라는 이유로 스티커가 붙고 정기적인 행정 조사를 받거나, 여기저기에 일사불란하게 사용되고 적재되는 처지는 어떤가. 미술 아카이브를 위해 탄생한 의자들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미술과 기관 밖 어디에선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종종 엉뚱하게,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의자의 삶이 (미술에 관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래형” 미술 아카이브를 위한 애초의 목적에 더 걸맞는 의자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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