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과 미술교육에서 가장 크게 부재하는 지점은 의외로 사실주의, 자연주의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근대미술교육은 근대 서구의 미술(교육)을 수용한 일본 미술(교육)을 통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때 사실주의 교육은 대상의 형태를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긴 했으나, 당시 도화임본의 내용은 루소의 사상—서구 근대미술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자연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을 기저에 두지 못 했고, 수업은 자연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사물을 모사하거나 임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근대화는 반강제적이고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의 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을텐데 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사실주의 미술을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한 결과는 그 이후에 필연적으로 따라왔어야 하는 다음 단계를 자연스럽게 맞이하지 못 했고, 다시금 쫓기듯이 따라가는 형국으로 전개되어 온 것 같다. 교육은 과거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현재를 수정하기도 하지만, 과거를 무형의 사회적 유산으로 물려주는 한편 그것이 고치기 어려운 습성처럼 존재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섭다. 습성은 머리로 이해해도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수정하는 교육은 제도가 아니라 개인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과거의 어긋난 틈새를 메우고 나아가는 교육은 미술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인 사람이 누구보다 극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가 역시 고치기 어려운 습성을 물려받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미술가는 자신의 일생에 걸친 창작 과정 속에서 그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작은 확률로나마 마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성도, 김혜숙, 「한국, 일본, 중국 근대미술교육의 변화양상 연구」, 『미술교육연구논총』 53 (2018.5.), pp.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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