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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본’으로만 이루어진 어느 미술 아카이브(?)에 관한 메모

‘아카이빙‘, ’연구‘, ’창조적 활용‘은 모두 중요한 말이다. 다만, 이 말에는 무엇을/왜/어떻게/(누가)/(언제)/(어디에서) 아카이빙하고 연구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할지에 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무결/무해한 ‘말’은 비로소 비집고 들어갈 ‘빈틈’으로서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 빈틈이 없이 말로 말끔히 정의된 아카이브는 평온하다. 평온한 아카이브에서는 담당자, 생산자, 사용자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도 함께 평온하다.이 아카이브는 ‘최종본’들로만 이루어진 아카이브다. 최종본으로만 이루어졌기에 그 최종본의 빈틈을 알 수조차 없다. 그래서 최종본은 말그대로 “수정 따위를 하여 고친 가장 마지막의 책이나 문서”로 평온하게 존재할 수 있고, 이 최종본들의 집합으로서 아카이브는 무결/무해한 언어로 단정히..

(미술(예술) 2025.05.27

공간 운영 종료에 관한 메모

그간 문화예술계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몇몇 곳에서 일했다. 아르코 산하 인사미술공간을 비롯해, 서울문화재단의 모 창작 공간, 모 소규모 전시 공간, 그리고 모 국공립 미술관 두 곳. 이 중 미술관 두 곳을 제외하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공간’들은 대부분 운영 종료됐거나 종료될 예정이다.공간의 운영 종료는 그곳에서 전시를 비롯한 창작 활동을 펼쳤던 작가와 기획자들에게 작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지 아카이빙, 홈페이지 등 기록이 소실되는 차원의 아쉬움이 아니다. 홈페이지, 기록물 등이 사후적으로 성실히 관리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사라지거나 크게 변화하면 그 공간을 통해서 과거의 활동을 상상적으로 기억할(될) 수 있는 여지가 소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아쉬움은 작가, 기획자 등 예술..

(미술(예술) 2025.05.22

망각되고 반복되는 것들

정책연구나 방향 설정 토론회 자료집 같은 과거의 문서들을 시기별로 쭉 살펴보면, 그 흐름이 어떤 유사한 문제의식의 망각과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멀리 거슬러 갈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이 문서는 용역 연구를 통해 2020년 발행된 정책연구서의 출력본이고, 그 위의 형광펜과 빨간펜 흔적은 2024년 2월경 어느 회의 준비를 위해 긋고 쓴 것들이다. 조금은 친절한 마음으로 긋기 시작한 형광펜이 분노의 빨간펜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또 시간이 흘러 2025년이다. 무엇이 어떻게 망각되고 반복되고 있나.

(미술(예술) 2025.05.15

김익현 《사진 전》

이 장소(시청각)의 마지막 전날 14시간 7분 동안만 어둡게 열리는 사진 전(前)의 시공. 작가에게 내가 기억하거나 상상한 사진의 전과 후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두운색 봉투를 하나 건네받을 수 있다. 이 봉투 안에는 인화지가 담겨 있다. 인화지의 앞/뒤에는 사진의 전/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인화지의 앞/뒤 모두 사진 후(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또 언젠가 이 사진 후는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사진 전의 시공으로 다시 열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