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예술)

(인스타그램) 사진, 인물, 배경

hasangpaullim 2024. 2. 9. 02:03

내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첫 사진을 올린 날은 2012년 2월 9일 목요일이다. 12년 전이다. 지금까지 앱의 아이콘이 몇 차례 바뀌었는데 난 아마 세 번째 아이콘일 때 시작한 듯하다. 기억으론 두 번째일 때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무엇이었든 인스타그램의 아이콘이 카메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던 시기에 계정을 만들고 첫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첫 게시물은 인물 사진이다. 이 인물 사진은 불과 30여년 전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잘못 가르치고 배우며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진 속의 여아는 간호사 복장을, 남아는 의사 복장을 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유치원에서는 이런 사진이 남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첫 사진에는 인물들이 있다.

그런데 이 인물 사진은 인화된 옛 사진을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사물을 가까이서 확대하여 촬영한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인물이 있는 사진을 재촬영한 사진은 인물 사진이 아니라고 친다면, 그리고 사람의 얼굴이 배경의 일부로 등장하는 사진도 인물 사진이 아니라면, 나는 인스타그램에 인물 사진을 거의 올린 적이 없다. 앞으로는 더욱 더 올리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무슨 컨셉 계정 같은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사람 얼굴이 나온 사진 이외의 사진, 각종 공적 사적 소식/홍보물, 기사/정보 스크랩 등 그때그때의 사진/이미지(+텍스트)를 큰 고민 없이(고민과 함께) 올려둘 뿐이다. 긴 글을 대부분의 사람은 읽지 않는다는 통계/전략은 공적 업무에만 참고할 뿐 사적으론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사진/이미지에 관해 필요한 글이라면 반드시 적는다.

이제 인스타그램은 사진보다 릴스를 비롯해 그밖의 새로 추가되는 서비스에 더 집중한다는 정보를 접했는데 실제로도 그 운영 전략을 체감하고 있다. 인물은 사진을 넘어 매우 짧은 영상 콘텐츠에 등장하고, 텍스트는 따로 적는 것이 아니라 사진/영상과 등장 인물에 이미지와 소리로 합쳐져 있다. 서비스 이용자(이자 데이터 자산 제공자)가 선호하는 형식의 콘텐츠를 더 노출시키는 동시에 이용자 스스로도 이를 생산해내도록 설계된 과정에서 사진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라 이해하고 있다.

가만 보면 사진은 뒤로 밀려났으나 인물은 여전히 전면에 나타난다. 뒤로 밀려난 사진은 일종의 배경이 되었으니 아예 인물과 분리시킬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이 덜 중요해지는 것과 별개로 인물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한다. 하지만 인물은 스스로를 드러낸다기보단 무엇을 노출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써 나타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인물은 등장하면서 동시에 숨어버린다. 숨어버리는 인물은 배경이 된 사진 뒤에서 그것을 받치고 서 있거나 아예 배경 밖으로 벗어나 있을테니, 사진을 애초에 (반)투명하거나 그림자가 드리우는 배경으로 여겨도 좋겠다.